
《시동》(2019)은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국 청춘 영화로, 가출 청소년의 자립 여정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최정열 감독이 연출하고, 박정민, 정해인, 마동석, 염정아 등이 출연해 강한 캐릭터성과 서사적 밀도를 동시에 보여준다. 영화는 전형적인 성장 서사를 따르지만, 그 전개 과정에서 인물 간의 관계, 공간, 상징들을 촘촘하게 엮으며 청춘기의 혼란과 희망을 실감 나게 그려낸다. 특히 ‘가출’, ‘만남’, ‘성장’이라는 3단계 구조를 중심으로, 한 인물이 세상과 부딪히고 스스로 삶을 선택하게 되는 여정을 따라가는 서사 구조는 영화의 핵심이다. 본 글에서는 《시동》의 서사 구조를 중심으로 영화의 전개 방식과 메시지를 분석해본다.
1. 가출: 집을 떠나는 것이 인생의 시작
《시동》의 주인공 택일(박정민)은 고등학생이지만 학교나 집, 그 어떤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다. 그는 반복되는 어머니(염정아)와의 갈등, 답답한 학교생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충동적으로 집을 나온다. 영화는 이 ‘가출’을 단순한 일탈이 아닌, 인물의 성장 서사의 출발점으로 설정한다. 어른이 되고 싶은데 어른이 되는 방법을 모르는 청소년의 현실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가출이라는 선택은 택일에게 ‘자유’처럼 보였지만, 곧 거친 현실과 마주하게 만든다. 무작정 떠난 도시에서 돈도, 숙소도, 보호자도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던 그는 우연히 중국집 ‘장풍반점’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마동석이 연기한 ‘정사장’을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택일의 진짜 여정이 시작된다.
서사 구조상 가출은 ‘기존 세계의 거부’ 단계에 해당한다. 영웅 서사의 구조에 따르면, 주인공은 일상을 거부하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시동》에서 가출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경험하고자 하는 의지로 해석되며, 이는 이후 전개되는 서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만남: 새로운 세계와의 충돌
택일이 장풍반점에 들어오면서 영화는 두 번째 단계인 ‘만남’의 장으로 접어든다. 정사장은 보기에는 거칠고 괴팍해 보이지만, 택일에게 세상살이의 본질을 가르쳐주는 중요한 멘토로 작용한다. 또래 친구 상필(정해인)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상필은 정반대로 조폭 세계에 발을 들이며 빠르게 현실화되는 인물이다.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부딪히고, 서로의 선택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 만남은 ‘타자와의 접촉’을 통해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정사장은 요리와 주방이라는 노동의 공간에서 택일에게 책임감과 인내, 공동체의 의미를 가르친다. 무턱대고 화를 내던 택일은 점점 감정을 조절하고, 주어진 일에 책임을 지게 된다. 반면 상필은 쉽게 돈을 벌지만, 점점 위기로 치닫는다. 이 대비는 영화의 서사를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웃음과 감동을 균형 있게 배치한다. 정사장의 유쾌한 언행, 주방에서의 해프닝, 택일의 실수와 성장 등이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감정을 유도한다. 단순히 무겁거나 교훈적인 방식이 아닌, 실제 삶에 녹아 있는 인간관계를 통해 서사를 전개하는 방식은 《시동》만의 강점이다.
또한 이 만남의 공간 자체가 상징성을 가진다. 장풍반점이라는 폐쇄된 공간은 마치 택일의 인큐베이터와 같다. 사회로 나가기 전 머무는 공간, 실수해도 괜찮은 공간, 그러나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공간이다. 이곳에서의 만남은 성장의 토대가 되며, 관객은 이를 통해 주인공과 함께 감정적으로 성숙해진다.
3. 성장: 떠나고 돌아오며 얻는 것들
영화의 마지막 단계는 ‘성장’이다. 택일은 장풍반점에서 생활하며 조금씩 변해간다. 처음에는 불평만 하던 그가 주방의 일을 익히고, 동료들과 소통하고, 정사장을 존중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직접 부딪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며, 택일은 스스로 ‘어른이 되는 방식’을 터득해나간다.
특히 영화 후반부, 택일이 엄마에게 전화하고 돌아가는 장면은 단순한 귀향이 아니라, 변화된 자아의 귀환이다. 이는 영웅서사에서 말하는 ‘보물의 귀환’으로 해석된다. 택일은 물리적 보물을 갖고 오진 않지만, 자신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삶의 태도라는 내면의 자산을 갖고 돌아온다.
성장은 고통을 수반한다. 상필의 사건, 정사장의 과거, 택일의 좌절 등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인물이 감정적으로 깊어질 수밖에 없는 계기들이다. 이 과정을 통해 택일은 더 이상 ‘도망치는 소년’이 아니라, 삶을 선택하는 ‘청년’이 된다. 영화는 이러한 성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변화의 징후를 보여준다.
영화는 마지막에 모든 것을 마무리 짓기보다는,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집중한다. 택일이 장풍반점을 떠나 또 다른 삶의 현장으로 이동하는 결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이 열린 결말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도 연결 지어 생각하게 만드는 여운을 남긴다.
4. 결론: 단순한 가출기에서 보편적 성장 서사로
《시동》은 외형상 청소년 가출 영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서사의 구조는 전통적인 성장 서사, 특히 ‘영웅 서사’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가출 → 만남 → 성장이라는 3단계 구조 속에서 주인공은 세상을 경험하고, 타인과 부딪히며,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 여정은 단지 극 중 인물의 변화를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도 위로와 희망을 건넨다.
웹툰 원작의 감성과 영화적 재구성 사이에서 《시동》은 유쾌함과 따뜻함, 현실과 이상, 갈등과 화해를 모두 아우른다. 성장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을 내딛고, 때로는 넘어지며 일어나는 과정임을 영화는 말한다.
《시동》은 오늘도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을 수많은 청춘들에게 말한다. “일단 시동은 걸어봐. 그리고 너만의 길을 찾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