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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염력>과 한국 도시 재개발의 문제 비교를 해보다

by 주PD 2025.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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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영화사 레드피터 / 배급사: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염력》(2018)은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고 류승룡, 심은경이 주연한 영화로, 초능력을 소재로 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이례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초능력을 얻은 평범한 남성이 철거 위기에 처한 딸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 밑바닥에는 ‘도시 재개발’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한국 사회의 이슈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염력》이 다룬 ‘재개발’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국 도시 재개발 문제의 실태와 현실을 영화 속 요소들과 비교 분석해본다. 특히 ‘용산 참사’의 잔영, 철거민의 인간적 고통, 개발 논리에 가려진 폭력성을 중심으로 영화의 사회적 메시지를 조명한다.

1. 용산 참사의 그림자: 염력이 건드린 현실

《염력》의 이야기 구조는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을 얻은 평범한 남자 석헌(류승룡 분)이 딸 루미(심은경 분)를 중심으로 철거 반대 투쟁에 나서게 된다는 설정이다. 표면적으로는 히어로물의 전개이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재개발 철거 상황은 현실의 ‘용산 참사’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2009년 용산에서는 상가 세입자들이 재개발 철거에 반대하며 옥상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6명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염력》은 이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시민이 철거에 반대하며 옥상에서 시위를 벌이고, 그 위로 진압대가 투입되는 장면은 너무나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이 사건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서사의 핵심 갈등 요소로 배치하면서 재개발이라는 주제가 가진 폭력성을 드러낸다. 철거민은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력을 당하고, 건설사 측은 언론을 조작하고 여론을 왜곡하며 공권력과 손잡고 철거를 진행한다. 이는 실제 재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현실과 매우 닮아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일방적 통보, 법보다 먼저 작동하는 이익 논리, 공권력의 비호 아래 자행되는 폭력성은 모두 영화 속 재개발 세력과 정확히 맞물린다.

용산 참사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철거 문제는 단순한 부동산 이슈가 아니라,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무너뜨리는 권력 사이의 충돌이다. 《염력》은 이를 히어로 장르를 통해 접근하면서, 오히려 더 대중적이고 쉽게 이 문제의 본질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2. 철거민: 숫자가 아닌 사람들

《염력》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철거민들의 일상과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영화는 그들을 단순히 ‘시위자’나 ‘피해자’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각자의 사연이 있고, 일상이 있으며, 소중한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기존의 재개발 보도나 행정 문서 등에서 이들을 단순한 ‘보상 대상’, ‘이주 대상’으로 치부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루미는 아버지로부터 버려졌다고 느끼며 성장한 청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터전을 스스로 지키려는 책임감이 강하다. 그녀가 운영하던 닭강정 가게는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엄마와 함께한 추억이 깃든 장소이며, 자신의 자립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루미뿐만 아니라 철거민들은 저마다의 삶을 그 공간 안에 축적해왔다. 이들이 싸우는 이유는 단지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의미와 기억이 깃든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 점에서 《염력》은 철거민들을 단순히 ‘피해자’로 소비하지 않고, 주체적 존재로 그려낸다. 심지어 이들의 분노, 절망, 연대의 과정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연상호 감독 특유의 사회적 리얼리즘은 《부산행》에서 좀비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계급을 풍자했던 것처럼, 《염력》에서는 초능력이라는 요소를 통해 철거민들의 고통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한다. 이는 단지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관객이 그들을 이해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게 만드는 설계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철거민은 종종 ‘도시 발전을 방해하는 존재’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염력》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며,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도시 개발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으며, 영화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3. 폭력성: 개발 논리에 숨겨진 국가의 민낯

영화 속 철거 장면은 단순한 행정 집행이 아니다. 철거 용역은 망치를 들고 철거민들을 위협하고, 경찰은 이를 묵인하거나 협조하며, 언론은 사실을 왜곡해 철거민을 ‘폭력 시위자’로 몰아간다. 이 같은 장면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재개발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사실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특히 민간 개발 사업자가 경찰과 결탁해 물리적 충돌을 유도하고, 법보다 빠르게 철거를 시도하는 장면은 현실의 사례들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염력》은 이러한 상황을 석헌의 초능력을 통해 전복시키려 한다. 평범한 남성이 초능력을 얻고, 그 힘으로 철거민들을 지키며,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구조는 마치 현대판 '의적'의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한 카타르시스로 끝나지 않는다. 석헌의 힘으로 일시적으로 위기를 모면하지만, 그는 결국 법과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구조를 바꾸진 못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힘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집단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흥미로운 점은 석헌의 초능력이 단순한 물리적 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저항의 상징’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슈퍼히어로처럼 거대한 적을 물리치지 않는다. 오히려 철거민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드론을 날려 여론을 환기시키며, 시민들의 응원을 받는다. 초능력은 상징적 도구일 뿐이며, 진짜 싸움은 현실에서 벌어진다는 점을 영화는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러한 접근은 《염력》이 단순한 장르 영화로 남지 않고, 사회 참여적인 작품으로 기능하게 한다. 관객은 단순한 통쾌함보다, 복잡하고도 무력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날카롭고 의미 있는 메시지다.

4. 결론: 초능력보다 중요한 연대와 공감

《염력》은 표면적으로는 초능력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실상은 매우 뿌리 깊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응시하는 영화다. 용산 참사에서 비롯된 철거 문제, 재개발의 명목 아래 벌어지는 폭력, 사람보다 자본이 우선되는 구조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영화는 ‘개발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이 영화는 철거민들을 단순한 동정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분노하고, 웃고, 서로를 위로하며, 끝내 연대한다. 그리고 그 연대는 초능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염력》은 이 시대 한국 영화가 어떻게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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